퇴근하고 옷 고치러 수선집 갔는데 수선집 할머니랑 여고생이 치마 길이를 두고 옥신각신 다투고 있었다. 할머니는 더 이상 줄이면 안 된다고 하셨고 여고생은 더 줄여도 괜찮다고 조르듯 계속 투정을 부렸다. 불황이면 치마 길이가 짧아진다고 했었나? 여고생 치마만 봐서는 국가 디폴트 사태가 온 줄 알았다.
그 여고생 말고도 다른 여고생이 있었는데 그 녀석은 말없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스마트폰을 두들기고 있었다. 패기 있게 접힌 여고생 치마 길이를 계속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와서 옷만 맡기고 내일 다시 오겠다고 했다. 할머니가 하시는 수선집 이름이 무려 '재생의 집'인데 철 지난 옷들도 여기서 한번 만지면 미리 나온 시즌 상품처럼 모양이 괜찮게 변한다. 그러니 첨단을 걷는 여고생들도 여기서 치마를 줄이겠지. 그런데 그게 설마 교복 치마는 아니었겠지(..)
예전에 친구 집에서 술 먹고 아침에 푹자고 있는데 여자친구가 온다고 해서 중간에 일어난 적이 있다. 아파트 복도 사이로 구두굽 소리가 또박또박 들리길래 왔구나 싶었는데 그 여자친구가 고등학생인 줄은 상상도 못했었지. 교복이 어색할 정도로 대단한 글래머였고 화장을 안 했어도 화장을 한 거처럼 또렷한 이목구비 또한 대단했다. 여튼 덕분에 술이 확 깼었습니다.
박해일 주연의 '은교' 아직 본 적은 없지만 주변에 영화 얘기가 많아서 여고생 얘기 잠깐 적는다. 나의 영원한 처녀라던가 욕망은 늙지 않는다 같은 카피들이 어찌나 깨알 같은지. 원작자는 영화 은교 개봉 후 자신의 책이 많이 팔리자 이걸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왠지 빡치는 기분으로 트위터에 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영화는 볼품없게 시든 몸뚱이를 원망하며 청춘에 대한 열등감과 매혹 사이에서 갈등하는 나이 든 시인 얘기 같다. 박해일 팬이라 그런지 개봉 전부터 관심이 많았다. 여기서는 늙은 시인으로 나오지만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의 박해일은 정말 빛났었는데. 영화에서 박해일이 부른 노래들 회사에서 종종 듣고 그랬다.

은교,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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